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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매거진』 마음의 소리를 담다 〈어텀 노트〉 김솔 감독
2024-05-04 18:03:00Hits 795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흩어진 밤〉(2021)으로 장편 경험을 쌓았지만 홀로 온전히 장편 연출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텀 노트〉 작업 경험은 어땠나.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있어 고맙고 든든했지만 단시간에 빠른 결정을 혼자 내리고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점이 가장 부담이었다. 반면 이번 작업에서는 스태프의 규모도 훨씬 적었는데 적은 수의 이들과 함께했기에 오히려 소통은 더 쉬웠던 것 같다.

영화는 제목처럼 가을을 배경으로 일기(혹은 노트) 형식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영상 일기를 보는 기분이기도 한데,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상한 이유가 있다면?

처음 시나리오에는 날짜 구분이 없었다. 그래도 큰 사건은 없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일기 같은 영화’라는 생각은 했었다. 무언가를 결심하고,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고, 그 생각들이 변화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하루하루의 내면을 보여주는 일기 같은 영화. 영화를 다 찍고 편집을 하면서 영화의 형식을 일기처럼 만들면 구조적으로 관객들이 더 쉽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떠한 일이 하나의 단락을 맺거나 시작할 때 일기장의 챕터처럼 날짜를 넣어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구성이 편집 리듬을 만들어준 동시에 수인(박세재)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을 보여주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낙엽 지는 날들을 배경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린다. 피아노 학원은 문을 닫고, 쓸모를 다한 공간을 정리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옆에 있다. 사라지는 것들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사라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수인의 심경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것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마주하는 수인은 아주 복합적인 마음이 들 것 같았다. 특히 피아노 학원은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고 자신이 어린 시절 연습을 하며 주로 시간을 보낸 공간이며, 자신의 학생들이 남긴 흔적이 있는 곳이다. 아버지의 작업실은 처음 마주하지만 자신의 악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등 수인의 잠들어 있던 기억을 건드리는 공간이다. 한편 피아노를 계속 치거나 연주자가 되겠다고 꿈꾸던 수인은 이제 그 생각을 그만두게 된다. 포기가 아닌, 그것을 ‘비로소 놓아주는’ 과정을 바래져 가는 주변 상황과 더불어 표현하고 싶었다.

공간 로케이션이 눈에 띈다. 과거 기억을 간직한 피아노 학원, 시간의 더께를 짐작하게 하는 고향집 풍경, 시간이 멈춘 듯한 아버지의 작업실 등 인상적인 공간이 다수 등장한다. 로케이션에서 염두를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 같은 공간,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유발될 수 있는 로케이션들을 찾았다. 특히 피아노 학원은 나와 내 또래들이 어렸을 때 다녔을 법한 곳을 찾았는데, 리모델링이나 도배를 하지 않아 오래된 낙서들이 그대로 벽에 남아 있길 바랐다. 햇볕이 잘 들고 가을에 어울리는 따뜻한 톤과 질감을 가진, 공간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학원을 찾았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여러 개의 방으로 이뤄진 구조는 어느 학원이나 비슷했지만, 영화에 나온 곳은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방에도 유리창이 있어 그곳을 통해 시간이 켜켜이 쌓인 느낌, 기억의 레이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작업실 공간은 실제 내 아버지가 몇 년째 방치(?)해둔 책방이다. 30년 넘게 근무한 그의 흔적과 삶이 녹아 있다. 수십 년간 근무해온 아버지의 흔적이 닿은 책들과 더불어 ‘요가원’이라는 글자와 사과를 들고 있는 여인이 인쇄된 시트지 등이 굉장히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 공간에 있으면 말 그대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언젠가는 이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런 오래된 책들과 묘한 기운 덕에 어떤 기억들과 예상치 못한 일들이 ‘팍’ 하고 튀어오를 것 같았고, 수인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장소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수인을 중심으로 한 ‘대화극’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연인, 아버지, 고모, 친구들 등 수인을 두고 상황에 따라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가볍게, 혹은 진중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이어진다. 이들의 대화를 집중해서 보여준 이유가 있을까? 혹은 이 장면들이 어떻게 연출되길 바랐는지 궁금하다.

여러 대화 장면이 있는데 수인은 주로 ‘듣는’ 사람이다. 수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그것을 듣는 수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객들이 짐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도 생각을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어떤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니까. 여러 변화를 앞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수인은 앞으로 어떻게 또 살아야 할지 스스로 생각을 할 텐데, 결국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종합적 여정을 통해 수인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 되었으면 했다.

수인 역을 맡은 박세재 배우의 담담한 연기 톤이 인상적이다. 그를 비롯해 주요 배역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박세재 배우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의 표정이 좋았다.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 있는데,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수인의 아버지인 성명 역의 이귀우 배우는 우선 장군 출신이라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연기를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열의가 강했다. 그런데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셨다. 고모 역의 안민영 배우는 영화에서 많이 뵌 터라 내적 친밀감이 컸다. 내게는 고모나 이모 같은 편안한 느낌이 있었다. 몇 년 전 전주영화제에서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전화번호를 여쭙고 나중에 꼭 같이하자고 말씀드렸다. 동운 역의 기윤 배우 역시 여러 영화에서 보았는데, 듬직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읽어낼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런 점이 그를 더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 같다. 〈어텀 노트〉 출연 전에 박세재 배우와 단편 작업을 하기도 해서 둘의 합이 잘 맞을 것 같았다.

브람스가 인생 후반부에 작곡한 Op. 118 no. 2(인터메조)가 영화 속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이 곡을 주요한 소재로 다룬 이유가 있다면?

사실 이 영화는 친구의 경험에서 착안하여 만든 영화다. 실제로 친구는 피아노를 전공했고 피아노 학원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피아노를 완전히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기 전 신인 연주회에서 연주를 했는데 그때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연주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웠고, 그렇기 때문에 피아노를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하더라. 친구의 경험이 인상 깊어서 그 곡이 무엇인지 물었다. 집에 와서 곡을 들어봤는데 아무런 사전 정보 들어도 곡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시작해 마음의 요동을 그리고, 다시 마음을 정리해 마무리하는 느낌이었달까?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 곡을 영화의 테마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준비하면서, 촬영을 하면서, 후반작업을 하면서 내내 이 곡을 들으며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수인의 얼굴에서 검은 화면으로 전환해 잠깐의 휴지기 후 인터메조가 흐르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이 부분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연출 포인트가 있을까?

관객 각자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잠시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예를 들면 수인의 연주 장면일 수도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수인이 어떤 마음으로 연주를 했을지 가늠해 보거나 혹은 마지막 장면과 이어져 피아노를 바라보는 수인의 마음은 어떨지 상상해 보았으면 했다. 또는 수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관객 각자가 자신이 그만두거나 지나오고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했을 때 각자의 심상을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어텀 노트〉는 사건이 중심인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수인의 심리를 따르는 드라마에 가까운데. 인물의 심리 변화를 보다 잘 담아내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무언가를 바라보는 수인. 그리고 대화 장면에서 이야기를 들을 때의 수인의 표정과 몸짓, 눈빛. 제스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박세재 배우가 표현을 잘해주어서 고맙다. 공간적으로는 오래된 곳의 흔적과 그곳에 남아 있는 물건들이 중요했다. 예를 들면 벽에 남아 있는 낙서나 곰팡이 핀 벽지, 창고에서 꺼낸 오래된 메트로놈 등등. 그것들을 수인이 바라보았을 때 수인의 마음에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 학원이 쉬는 날, 가만히 공간을 둘러보며 수인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공간의 특징을 살펴보았고 이를 영화에 잘 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편집 단계에서는 시간의 결이 담긴 피아노 학원의 이미지를 쌓는다든지, 수인의 마음에 그려지는 인터메조의 멜로디를 삽입하는 등 이미지와 멜로디의 적절한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창작자로서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소재나 이야기가 있나?

두 사람이 부딪히고 어그러졌다가 다시 만남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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