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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매거진』 모든 이야기는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한다 〈양양〉 양주연 감독
2024-05-04 18:03:00Hits 792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양양〉은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고모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어떤 지점이 마음을 건드렸나.

고모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상황에서 우연히 알게 된, 대학교 때 자살했다는 고모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고모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예전에는 할머니 집이었다가 이제는 부모님의 집이 된 곳에서 고모 사진을 발견했다. 그 사진들을 보니 더 강렬히 고모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고모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남기고 싶었다.

고모 이야기인 만큼 가족 이야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카메라 앞에 등장한다. 전작인 〈옥상자국〉(2015) 역시 감독의 가족인 외할머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가족을 통해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업에는 심정적인 어려움도 상당할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일의 조심스러움은 무엇일까, 반대로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고 내 주변에 있는 가족 이야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양양〉을 촬영할 때 스스로 조심했던 부분이 있다면 가족이라고 쉽게, 당연하게 촬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 이야기 안에서 이 장면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촬영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가족들에게 카메라가 함부로 다가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적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느냐 표현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적인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의 절대성을 경계하려고 하는 편이다.

학부는 방송영상,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고 다큐멘터리스트로서는 오랜 기간 우리 사회 주변부 사람들(쪽방촌, 비정규 청소노동자)의 삶을 조명해왔다. 전작의 경험들이 〈양양〉에 어떤 영향을 준 것 같나.

전작은 주로 나 혼자 촬영하고 편집을 했다. 혼자 작업을 하면서 얻게 되는 자유로움도 있지만 외로움도 있었던 것 같다. 〈양양〉에서는 협업을 도전해 보고 싶었다. 다음 영화에서는 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

고모의 잊힌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추적극, 혹은 미스터리물 같은 느낌이 전해지기도 한다. 주변인의 진술과 정황적 판단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염두에 둔 것이 있다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고모의 잊힌 삶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고모의 자살을 둘러싼 여러 정황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개인적인 사건을 사회문화적 맥락 아래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 같은 시선의 역전 혹은 확장은 어떻게 일어나게 됐나. 고모의 행적을 좇는 과정에서 어떤 계기가 있었을 듯한데.

고모의 죽음에 대한 사실적 정보는 사건이 일어난 그때 당시 조사되었을 때 가장 정확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 제대로 조사되지 못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더 궁금했던 건 ‘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실증적인 조사를 거치지 못한 죽음들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묻고 싶었다. 비밀이 되거나 수치로 기억되어야만 했던 죽음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다.

영화 중간중간 삽입된 애니메이션이 인상적이다. 무채색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어떤 이유에선가.

처음 애니메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흑백으로 남겨진 고모의 사진이 영화 안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치 연필로 스케치하면서 채워가듯이 고모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양홍지 애니메이션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여러 아트워크 레퍼런스를 참조했고, 결과적으로 〈양양〉에 맞는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이 사실적 행위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연이 고모를 알아가는 여정을 함께 드러낼 수 있는 영화적 표현의 장치로 사용되기를 원했다.

〈양양〉은 제작 과정에서 핫독스 크로스커런츠펀드의 지원을 받았고, 독인큐베이터와 전주프로젝트 워크인프로그레스 등을 통해 편집 및 제작 단계에서 다양한 피드백과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안다. 이러한 것들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독인큐베이터는 체코를 기반으로 약 9개월여에 걸쳐 진행되는 편집 워크숍이다. 일 년에 여덟 개의 인터내셔널 프로젝트를 선정하는데 〈양양〉은 아시아 최초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편집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편집감독들을 만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던 게 큰 배움이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편집감독과 협업해야 하는지, 다큐멘터리 편집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지를 느끼고, 그걸 〈양양〉을 편집할 때도 적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워크인프로그레스를 통해서는 〈양양〉 러프 컷을 해외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국내 산업 관계자들에게 선보이고 피드백을 들은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고 완성까지 시킬 수 있어서 기쁘다.

독립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과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은 분명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있어 제도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뒷받침됐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장편 다큐멘터리 제작 기간은 어림 잡아 평균 3년 정도 되는 것 같다. 긴 기간 동안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많은 제작지원제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가장 필요한 건 프로젝트 단계별로 세분화된 지원이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기획개발지원이, 중기에는 제작지원이, 후기에는 후반제작지원이 필요하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닌 창작자로서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바라봤을 때, 지금 현재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현재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트라우마’다. 드러나지 않았던 무언가를 드러내는 작업에 관심이 많고, 그중 하나가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를 드러낼 수 없는 사회에서 트라우마는 개인의 영역으로만 남겨지고 비밀이 되는 것 같다. 드러내고, 드러낼 수 없는 간극을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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